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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유산/환우이야기.보호자 가이드

안양천까지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러 갔다.

by Salndehuman의 The humanstory 2026.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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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기증 서약 이후,

나는 매일 집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현관문까지.

그 다음에는 집 앞 골목까지.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안양천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집에서 안양천까지.

건강한 사람에게는

산책이라고 부를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목숨을 걸고 건너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문제는 몸만이 아니었습니다.


세상도 두려웠습니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놀랐고,

오토바이 소리만 들어도 움찔했습니다.


사람들이 가까이 지나가는 것조차 무서웠습니다.


내 몸은

이미 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팔은 떨리고,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고,

허리는 점점 앞으로 숙여졌습니다.


발은 바닥을 끌며 움직였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파킨슨병 환자인 줄 몰랐습니다.


그저

비틀거리며 걷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쯧쯧..."


"젊은 여자가 얼마나 술을 마셨길래..."


"몸이 저 지경이 됐대?"


"손까지 떠는 걸 보니 수전증도 있나 보네."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왜 이렇게 걷는지,

설명할 힘조차 없었습니다.


그저

묵묵히 걸을 뿐이었습니다.


사실 사람들의 말보다 더 힘들었던 것은

내 자신이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예전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과연 다시 걸을 수 있을까."


수없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앞으로 쏠리기 시작했습니다.


멈추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습니다.


비틀거리던 몸은

그대로 남의 집 대문 앞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창피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또 다른 날에는

길가 쓰레기 더미 위로 넘어졌습니다.


그날 집에 돌아와

한참 동안 울었습니다.


몸이 아파서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음 날이 되면

또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나는 다시 안양천으로 향했습니다.


넘어지는 날도 있었고,

주저앉는 날도 있었고,

눈물을 흘리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루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안양천에 가는 이유가

운동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그 길을 걷고 있었던 것입니다.


강물은 말이 없었습니다.


바람도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너는 아직 살아 있다."


그날 이후,

안양천은 단순한 산책길이 아니라

내 삶의 재활병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은

결국 한강으로 이어지고,

서울의 궁궐로 이어지고,

내 인생의 새로운 길로 이어지게 됩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안양천은

강이 아니라

절망과 희망 사이를 흐르는 강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매일 그 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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