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나요?"
"희망을 잃지 않은 비결이 있었나요?"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한 순간을 떠올립니다.
바로 장기기증 서약서를 작성하던 날입니다.
2000년대 초반.
파킨슨병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몸은 내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고,
세상과의 관계도 하나둘 끊어져 갔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이 두려웠고,
거울 보는 것도 싫었습니다.
나는 점점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무렵의 나는
삶보다 죽음을 더 자주 생각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 뭐 하나."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고통인데."
"차라리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수없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장기기증 서약서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죽을 몸이라면..."
"누군가에게라도 도움이 되고 가자."
그 생각 하나로
장기기증 서약서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삶을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에게 줄 몸이라면..."
"조금이라도 좋은 상태로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그 생각은
내 삶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날 이후
나는 처음으로
내 몸을 살리는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죽기 위해 준비하던 사람이
살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내 인생의 가장 큰 역설이었습니다.
몸은 여전히 아팠습니다.
파킨슨병도 그대로였고,
미래도 불안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달라졌습니다.
나는 더 이상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주 작은 도전들이 시작되었습니다.
문지방을 넘어 보기.
집 앞까지 걸어 보기.
안양천까지 가 보기.
오늘보다 내일
단 한 걸음이라도 더 걸어 보기.
누군가는 그것을 운동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그것은
삶으로 돌아오는 과정이었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장기기증 서약은
죽음을 준비하는 서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다시 살게 만든
생명의 계약서였습니다.
사람은 때때로
모든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장 중요한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나는 죽음을 준비하다가
삶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다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나는 믿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은
거창한 성공이나 기적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조용히 내린
작은 결심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날 내가 적었던 이름 한 줄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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