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을 만난다.
학교의 문.
직장의 문.
결혼의 문.
그리고 때로는
죽음의 문턱까지.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넘기 어려웠던 문은
다름 아닌 집 앞 현관문이었다.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 난 뒤,
내 마음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왕 남에게 줄 몸이라면
조금이라도 좋은 몸으로 만들어보자."
말은 쉬웠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몸은 여전히 떨렸고,
허리는 점점 앞으로 굽어졌으며,
다리는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밖으로 나가 있었지만
몸은 여전히 방 안에 갇혀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나는 신발을 신고
현관문 앞에 섰다.
그리고 한참 동안
문고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무서웠다.
넘어질까 봐.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까 봐.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상과 나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놓여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못 나가면
내일도 못 나간다."
나는 눈을 감고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바람이었을까.
천천히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또 한 발.
세상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몸은 이미 균형을 잃고 있었고,
다리는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그날 나는
멀리 가지 못했다.
집 앞 몇십 미터를 걷고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알 수 있었다.
오늘 내가 이긴 것은
파킨슨병이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서워
숨어 있던 나 자신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문밖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집 앞.
그다음에는 골목.
그리고 조금 더.
조금 더.
그렇게 나의 세상은
손바닥만 한 마당에서
골목길로,
골목길에서 안양천으로,
안양천에서 한강으로,
한강에서 서울 전체로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인생의 기적은
거대한 산 정상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문지방 하나를 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고.
그날 내가 넘은 것은
현관의 문지방이 아니었다.
절망과 희망 사이의 경계선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한 걸음이
훗날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게 될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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