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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유산/환우이야기.보호자 가이드

문지방을 넘던 날

by Salndehuman의 The humanstory 2026.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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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을 만난다.

학교의 문.

직장의 문.

결혼의 문.

그리고 때로는

죽음의 문턱까지.


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넘기 어려웠던 문은

다름 아닌 집 앞 현관문이었다.


장기기증 서약을 하고 난 뒤,

내 마음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이왕 남에게 줄 몸이라면

조금이라도 좋은 몸으로 만들어보자."


말은 쉬웠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몸은 여전히 떨렸고,

허리는 점점 앞으로 굽어졌으며,

다리는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마음은 이미 밖으로 나가 있었지만

몸은 여전히 방 안에 갇혀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나는 신발을 신고

현관문 앞에 섰다.


그리고 한참 동안

문고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무서웠다.


넘어질까 봐.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까 봐.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세상과 나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놓여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못 나가면

내일도 못 나간다."


나는 눈을 감고

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바람이었을까.


천천히

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또 한 발.


세상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몸은 이미 균형을 잃고 있었고,

다리는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그날 나는

멀리 가지 못했다.


집 앞 몇십 미터를 걷고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알 수 있었다.


오늘 내가 이긴 것은

파킨슨병이 아니었다.


두려움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서워

숨어 있던 나 자신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매일 문밖으로 나갔다.


처음에는 집 앞.


그다음에는 골목.


그리고 조금 더.


조금 더.


그렇게 나의 세상은

손바닥만 한 마당에서

골목길로,

골목길에서 안양천으로,

안양천에서 한강으로,

한강에서 서울 전체로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했다.


지금도 나는 생각한다.


인생의 기적은

거대한 산 정상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문지방 하나를 넘는 용기에서

시작된다고.


그날 내가 넘은 것은

현관의 문지방이 아니었다.


절망과 희망 사이의 경계선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한 걸음이

훗날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게 될 줄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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